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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 SM7 3.5 시승기

  • 기사입력 2005.05.07 10:21
  • 기자명 이상원
르노삼성의 SM7 3.5는 국내 최초의 프리미엄 준대형 스포티세단이다.
초겨울 밤의 차가운 공기를 고속으로 가르며 질주하는 SM7 운전석에 앉아서 내린 결론이다. 지금까지 국내에 출시된 승용차 중 가속력과 종합적인 밸런스가 가장 우수하기 때문이다. 서스펜션만 좀 더 견고했다면 스포츠세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적당한 차체 크기와 중량에다 넘치는 파워, 그 힘을 잠재울 브레이크까지 갖췄다. 여기에다 진보적이고 럭셔리 분위기의 인테리어도 강점이다. SM7이 국내 생산제품이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닛산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디자인과 인테리어▼
쿠페 스타일의 4도어 세단은 국내 처음이다. 이런 스타일의 특징은 스포티하다는 것. SM7의 베이스모델인 닛산 티아나를 보면 그 스포티함이 잘 드러난다. 극도로 짧은 앞뒤의 오버행(overhang·바퀴 앞부분의 길이)과 듀얼머플러는 자신의 성격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스포티세단이라는 이미지로는 폭넓은 고객층을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에 르노삼성은 티아나에 손질을 가해 고급스런 분위기를 풍기도록 했다. 번쩍이는 크롬 그릴과 사이드 몰딩을 붙이고 앞뒤 범퍼의 길이도 각각 8cm정도 늘였다.

스포티한 실루엣에 어울리지 않게 엄숙한 마스크가 더해진 SM7은 다행히도 언밸런스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버행(overhang·바퀴 앞부분의 길이)이 BMW의 그것처럼 워낙 짧아 범퍼를 약간 늘여도 여전히 보통 전륜 승용차에 비해서는 타이트한 느낌이다. 일부에서는 길어진 범퍼를 놓고 ‘대형차냐 아니냐’는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기자에게는 무의미하게 보인다. 대형이면 어떻고 중형이면 어떤가. 전폭과 전장이 언제부터 그렇게 중요한 이슈였나. 시승해보고 작다고 느껴지면 안사면 그만 아닌가. 성능과 조립품질, 핸들링, 안정성의 문제를 따진다면 얼마든지 반기겠다. 왜 그런 논쟁이 시작됐는지 석연치 않다.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인 것을...


인테리어는 현대적인 감각의 응접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시원하게 뻗은 대시보드와 고급스런 월넛 칼라의 무광 우드그레인은 조화로웠고 시트 등받이는 활처럼 예술적인 곡선을 그리고 있다. 매년 디자인이 발달하는 자동차를 보고 있자면 인간의 창조력이 신비스럽기만 하다. SM7은 국내 업체들을 자극해 멋진 인테리어를 갖춘 자동차를 탄생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다 내장재의 꼼꼼한 마무리와 부드럽고도 절도있는 스위치류의 작동감은 SM7에 한층 고급스러움을 더해준다. 시트는 옆부분 지지력이 좋아 보통 체구의 성인이 스포츠드라이빙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다만 계기판이 밝기는 했지만 슬림한 대시보드 디자인에 짜맞춰진 탓인지 정보전달력이 약간 떨어졌고 몇 군데서 들리는 내장재의 마찰음과 떨림도 서비스센터를 한두 번 방문해야 잡힐 것 같았다. 운전석 윈도우 스위치의 위치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흠이다.

실내공간은 전반적으로 쏘나타 보다 미세하게 작아보였다. 뒷좌석이 좁다는 평이 많았지만 키 177~180cm인 동료기자 4명을 태워본 결과 큰 불편을 느껴지는 않았다. 전륜이 범퍼 앞쪽으로 바짝 붙어서 설계된 덕분에 앞좌석의 레그룸은 상당히 깊다. 그러나 선루프가 채택된 천장은 낮은 편이어서 앉은 키가 큰 탑승자들은 머리카락이 살짝 닿았다. 키 180cm 이상에 허리가 긴 편이라면 선루프 옵션은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동력성능▼
SM7 3.5의 3498cc 네오 VQ엔진은 5600rpm에서 217마력을 토해낸다. 최대토크는 3500rpm에서 32kgm. 티아나와 같은 엔진이지만 연료품질과 내구성 등 한국의 실정을 고려해 마력과 토크를 7%정도 줄였다. 이 엔진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닛산 맥시마와 350Z에 들어갈 때는 각각 265마력과 287마력으로 튠업된다.

여기에 연결되는 5단 자동변속기는 일본 아이신의 것으로 1580kg인 차체를 시원스럽게 발진시킨다. 1마력이 담당하는 차체무게는 7.28kg(네트마력 기준)에 불과해 국내 최고 수준이다. 국산차 중 최대 배기량인 에쿠스 4.5가 7.59kg, 스포츠 쿠페인 투스카니 2.7은 7.81kg이다. 1마력당 무게비율이 낮을수록 가속력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실측한 0->100km/h(제로백) 시간은 7.5~7.8초 사이로 역시 국산차 중 최고다. 제원상 8.6초인 것은 성인 5명이 탑승한 총중량 상태로 측정했기 때문이라고 르노삼성측은 밝혔다. 운전자 혼자 탑승했을 때는 1초정도 제로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0-400m(쿼터마일) 주파시간은 15.5초 부근으로 가속력 면에서 스포티가 아니라 확실한 스포츠세단의 자격을 갖췄다.

GPS기기로 측정한 최고속은 222km/h였는데 이 때 계기판의 바늘은 마지막 눈금인 240km/h를 넘어 계기판 바닥에 붙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초반 가속력으로 볼 때 GPS로도 최소한 230km/h이상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회사측은 최고속 리미트를 걸어두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더 이상 속도가 오르지 않는 것은 출력부족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가속력은 독일의 3000cc급 스포츠세단을 근소하게 앞서는 결과였으며 240마력짜리 엔진을 올린 혼다 어코드 3.0과 대등했다. 국산차 중에는 당분간 SM7 3.5를 당해낼 자(者)가 없을 것 같다. 이처럼 급가속을 하는 과정에서도 변속감은 비단결 같다. 그러나 팁트로닉의 반응은 더디고 다운시프트 때 rpm의 보정도 정확치 않아 효용성을 크게 느끼진 못했다.

계기판 오차에 대해 한 번 더 언급해두고 싶다. 시승차만의 문제였는지 몰라도 오차가 비교적 큰 편이었기 때문이다. GPS로 시속 90km/h(5단 1900rpm)일 때 계기판은 이미 100km/h를 가리키고 있었다. 계기판 대부분의 영역에 걸쳐 +8~10% 오차가 발생했다. 안전을 이유로 업체에서는 일부러 +오차를 두고 있고 관련 법률도 +10%까지는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타 사의 경쟁 차종은 100km/h까지는 +2~3%정도의 오차율을 보였고 150km를 넘어서야 +10% 정도가 된다. 계기판 오차가 주행거리 오차로 까지 이어진다면 보증수리 기간에 대한 시비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핸들링과 승차감▼
소 곱창처럼 구부러진 경주 토함산의 내리막길을 새벽에 달렸다. 차량통행이 전혀 없는 고갯길을 고속으로 내려오니 다운힐 레이스를 주제로 한 일본만화 이니셜D의 주인공 타쿠미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짧은 오버행과 지름이 작은 스티어링휠 덕분인지 핸들링 반응은 소형차처럼 대단히 민감하고 빨랐다. 국내 중형이상 승용차 중 가장 반응이 빠른 듯했다. 보수적인 운전자들은 예민함이 다소 거슬릴 수도 있겠다.

전륜 오버행이 짧을수록 차의 앞머리 부분이 관성의 영향을 적게 받기 때문인지 회두성(回頭性)이 좋다. 기본적인 성향은 약한 언더스티어였으며 120도의 짧은 커브길에서 웬만큼 잡아돌려도 타이어 미끄러지는 소리 없이 라인을 따라 돌아가 서스펜션의 세팅이 제법 뛰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VDC(차체자세제어장치)의 도움도 제법 컸다.

서스펜션은 SM5보다 약간 부드럽게 설정돼 있고 그랜저XG나 오피러스보다는 단단했다. 출렁이는 부드러운 승차감을 좋아하는 오너들에게는 약간 단단하게 느껴지는 수준이다. 회전시의 롤링(차체기울어짐)은 독일의 스포츠세단들보다는 조금 크기는 하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특히 150km/h정도에서 지그재그로 차선을 변경하면서 차체를 심하게 흔들어도 급격한 무게이동에 따른 자세의 흐트러짐이 적어 중고속 영역의 주행 안정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120km/h에서 급하게 조향을 한 직후 급브레이크를 밟는 테스트에서는 오버스티어 현상과 함께 차체의 휘청거림이 제법 나타나 쏘나타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전륜에 하중이 집중되면서 접지력이 갑자기 증가하는데 반해 후륜은 접지력이 약해지는데다 회전방향의 바깥쪽으로 원심력이 발생하면서 불안정하게 나타나는 기분나쁜 오버스티어 현상이다. VDC가 열심히 자세를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불안감을 없애지는 못했다. 부드러운 세팅의 전륜구동 세단들이 가지는 원죄(原罪)라고나 할까. 독일산 후륜구동 스포츠세단들은 전후륜 50:50 무게배분과 서스펜션 및 브레이크 세팅으로 이 테스트를 무덤덤하게 통과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승차감은 약간 단단하면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았고 핸들링은 상당히 민감해 역시 스포티세팅으로 규정된다. 고속 급차선 변경과 깊은 코너를 돌아나갈 때의 안정감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러나 200km/h 이상의 초고속 안정성과 극한 테스트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런 부분까지 만족시키려면 생산원가가 급격히 높아져 소비자들은 최소한 현재 가격의 50%는 더 지불해야 한다.

▼정숙성▼
엔진음색은 전기모터 소리가 났던 SM525와 거의 흡사했으나 소음은 더 줄어들었다. 바람소리도 절제돼 있어 160km/h에서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차가 스스로 발생시키는 소음은 극히 적다. 그러나 외부소음의 차단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르노삼성은 두꺼운 유리를 채용해 소음을 줄였다고 주장하지만 큰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에쿠스와 오피러스에 비해서는 타이어소음과 외부소음의 유입이 컸고 그랜저XG와 비슷하거나 미세하게 나은 정도다.

이 때문에 아스팔트로 포장이 잘 돼있고 교통량이 적은 도로를 달리면 구름 위를 떠가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노면이 거칠거나 주변에 트럭과 버스가 많다면 외부소음의 유입으로 정숙성은 반감된다. 타이어에서 튀겨진 돌조각이 차체에 부딪히는 소리도 '투두둑'하는 한 번 걸러진 소리가 아니라 '따다닥'하는 소리여서 휠하우스와 바닥방음이 상급수준은 아니다. 외부소음 차단만 좋았다면 나무랄 데 없는 프리미엄급 준대형급이 됐을 것이다.

▼옵션과 가격▼
RE3.5는 옵션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VDC와 운전석-조수석-사이드-커튼 에어백이 기본이다. 진보된 네비게이션과 7인치 TV, 차량의 각종 상태를 알려주는 트립컴퓨터, 후방카메라, 스마트키도 기본 적용된다. 이밖에 ABS BAS EDB 등 브레이크 보조장치와 솔라컨트롤 유리 등 대형세단의 풀옵션에 대당하는 장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선택사양 품목은 선루프 하나 밖에 없다. 차량가격 3510만원에 3500cc 엔진과 이 정도 옵션이면 비싸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특히 2440만원으로 책정된 6기통 SE2.3의 가격은 4기통 엔진인 NF 소나타 F2.4와 비교해볼 때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총평▼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한 획을 그을 차종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경험했던 국산차에 비해 완성도와 디자인이 한 차원 높았고 중형급 차체에 3500cc 엔진을 올린 것도 처음이다. 때문에 가속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중형차에 대형차급 인테리어와 옵션 및 파워트레인이 적용됐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앞으로 렉서스 ES GS클래스나 BMW 5시리즈처럼 오너용 프리미엄급 중형세단의 시장이 열릴 것을 예고하고 있다.

SM7 3.5는 중고속 영역 가속력은 독일의 스포츠세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그러나 200km/h 이상의 초고속 영역에서는 가속력과 안정성이 떨어져 스포츠 대신 스포티라는 단어를 붙일 수밖에 없다. 고급스러움과 파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조용하고 크기가 부담스럽지 않은 차종을 구입하려는 하이클래스 오너에게 딱 어울린다. 내년에 등장할 그랜저XG의 후속 모델인 TG가 어떻게 SM7을 대적할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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