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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이오면~ 여기는 ''초목 나라''… 광릉수목원에서 봄을 예약하세요

  • 기사입력 2006.03.03 11:18
  • 기자명 변금주

                   
 
봄이 저만치서 달려왔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광릉 국립수목원의 초록 단장을 서두른다. 전나무, 가문비나무의 푸른 잎을 가렸던 잔설은 말끔히 사라졌다. 풍년화의 꽃망울이 팝콘처럼 터진다. 숲길에서는 딱따구리가 “따다다다다닥” 봄의 왈츠를 연주한다. 겨우내 배 곯은 고라니는 먹이를 찾느라 다리를 재게 놀린다.
 
봄이 동장군을 누르고 개선한 것이다. 연초록빛 감도는 나뭇가지와 땅속에서 뛰쳐나온 개구리가 산천의 봄을 알린다. 도시는 어떤가. 듬성듬성한 가로수는 아직 앙상하다.
 
도시의 봄은 TV가 알려온다. 도시인들은 밥상머리에서 꽃봉오리와 개구리를 담은 영상 뉴스를 보며 “아, 봄이구나” 감탄한다. 밥술을 뜨다가 얼떨결에 맞는 봄은 싱겁고 허망하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무 공화국’인 광릉 국립수목원이 있다. 나무와 흙 냄새, 새소리가 그득한 수목원에서 ‘라이브’로 봄을 느껴보자.
 
수목원에는 나무와 새들만 봄기운에 들떠 있는 게 아니다. 연구관과 연구사, 숲해설가들도 분주해진다. 식물 연구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 올해 처음 채용한 코디네이터들도 새 업무를 익히느라 덩달아 바쁘다. 사람들은 꽃과 나무, 숲을 가꾸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봄의 활기를 맛보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영화관과 맛집에 물린 연인들의 새로운 데이트 장소로도 제격이다. 자동차 소음과 텁텁한 공기로부터 해방돼 데이트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책로에 ‘팔짱 반드시 낄 것’이라는 팻말이라도 있는 걸까. 너른 수목원 산책로를 거니는 남녀는 다정히 몸을 밀착한 채 걷는다.
 
수목원은 가족 봄나들이에도 제격이다. 부모는 아이의 게임 중독을 탓하기 전에 숲을 거니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 준 적이 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학교 과제인 체험학습을 마지못해 했다면 이번에 진정한 체험학습을 수행해보는 것도 괜찮다.
 
5살 민석이를 데리고 남편 명순식씨와 수목원을 찾은 김미숙(33·경기 동두천시)씨는 “놀이방에 다니는 아이를 위해 남편과 함께 평일에 월차를 내서 찾아왔다”며 “날씨도 많이 따뜻해진 요즘 숲과 자연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숲이 잘 보존된 이유는 이곳이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묻힌 광릉의 부속림이었기 때문이다. 500여년간 신성한 황실림으로 지정돼 풀 한 포기 뽑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1999년 산림청 국립수목원으로 정식 개원된 후 나무들은 ‘주권자’로 대접받아왔다. 국립수목원은 가난과 남벌로 핍박받아온 나무들의 이상향인 셈이다.
 
광릉 국립수목원은 주말과 휴일에 휴관하고, 주중엔 하루 입장객을 5000명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3, 4월까지는 하루 전에 무난하지만 성수기인 5∼10월에는 5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수목원 정문에서 조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무가내는 통하지 않는다. 당일 명단에 없으면 결코 입장할 수 없다. 하지만 숲과 생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니 수목원의 예약제 운영에 그리 화낼 일은 아니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푸른 봄을 만끽하는 데 그 정도 배려는 어렵지 않다.
 
경칩이 얼마 남지 않은 봄의 초입이다. 도시의 밋밋한 봄이 개운치 않다면 수목원에서 싱그런 봄을 맞는 것은 어떨까. 수목원 입장 예약은 생생한 봄을 예약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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