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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동 계곡보다 더 볼거리가 많은 적상산성

  • 기사입력 2006.06.05 13:57
  • 기자명 이상원

'무주 구천동' 너무나 잘 알려진 우리나라 중부의 대표적 휴양지다.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구천동 계곡과 웅장한 덕유산세가 찾는 이들을 흠뻑 빠져들게 한다..
 
그러나 무주엔 구천동과 서구풍의 리조트만 있는게 아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무주엔 적상산성이란 빼어난 볼거리도 있다. 적산산성은 무주구천동에서 10km남짓한 거리에 있으나 워낙 유명한 구천동 계곡과 무주리조트에 밀려 일반인들의 발걸음이 그리 많지 않는 곳이다.
 
적성산성은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1614m)에 버금가는 높이에 위치해 있는 산성으로 여기엔 국내에서 가장 높은 호수인 적상호와 고찰 안국사, 그리고 4대사고중의 하나인 적상사고, 전망대 등 빼어나면서도 독특한 곳들이 많다.
 
적성산성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에서 무주IC로 빠져나와 약 3km가량을 달리다 보면 우측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겨우 차 두대가 비킬 수 있는 꼬불꼬불한 도로를 한 10여분 달리다 보면 오른쪽 비탈에 10여채의 민가가 나타난다. 마을입구엔 무량마을이라고 쓴 큼지막한 돌 팻말이 찾는이를 맞이한다. 무량마을이라, 절 냄새가 나는걸 보니 안국사가 가까운것 같은데.. 하지만 이런 지레짐작은 금물이다. 이곳에서 한 2km를 더 가면 그제서야 적상산성의 입구가 나타난다.
 
국립공원이라 입장료를 받는데 어른은 3천200원, 어린이는 1천600원, 단체는 3천원이다. 이곳에서 표를 구입하면 구천동등 다른 국립공원도 무사 통과할 수가 있다.
 
입구에서부터는 그야말로 S자코스다. 이 길은 그저 평범한 S자코스가 아니라 가파르면서도 깎아지른 S자다. 네비게이션에 나타나는 도로 모양새를 보면 마치 실뱀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형국이다.
 
이 길을 따라 시원한 계곡이 흘러내리는데 서늘한 찬바람과 시원한 계곡물소리가 어느덧 더위를 말끔히 식혀준다. 곳곳에 차량이 50여대 이상 주차할 수 있는 넓은 주창을 마련해 놓고 있어 단체로 찾아도 무방할 듯하다.
 
헉헉거리며 산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수많은 군소봉우리들이 발아래 흩어져 있고 저 멀리 구천동 계곡아래 담수호도 까마득히 내려다보인다.
 
눈을들어 위를 쳐다보면 곧 20여미터 길이의 바위를 깎아만든 적상터널이 나타나고 이어 정상부근에 돌로 쌓은 댐모양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런 높은곳에 웬 댐일까? 의아해하며 정상에 오르면 눈앞에 아담한 푸른 호수가 펼쳐져 있다. 입구서 있는 커다란 돌이 '적상호'라는 호수이름을 말해준다.
 
이 높은곳에 왜 호수를 막았을까? 여러 의문을 뒤로 하고 조금더 나아가면 적상산 사고와 안국사, 그리고 호수를 한바퀴돌아 저만치 오른편에 커다란 물탱크같은 물체가 보인다.
 
우선 안국사부터 둘러보자. 적상호에서 한 2분정도 다시 꼬불꼬불한 도로를 올라가다 보면 정면에 공사중인 일주문이 나그네를 맞이하고 곧이어 고색창연한 사찰경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주차장마당 옆에는 오래된 해우소와 그 아래 수풀속에 가지런한 비석 하나가 눈길을 끈다.적상산성 호국사비라 새겨진 이 비석은 적상산에 지은 호국사(안국사)의 창건과정을 기록해 놓은 것인데 조선 인조때 전라감사로 있던 윤명은이 사비를 들여 지은 절이나 1949년 여순반란사건에 불타버리고 터만 남게 됐다.
 
안국사는 대웅전과 지장각, 극락전, 천불전, 성보박물관, 삼선각 등 7개 건물로 이뤄져 있으며 성보박물관은 세계 각국의 불상들을 모아놓은 곳으로 볼거리가 많은 건물이다.
 
여기엔 대만의 청대 목관세음보살, 건칠목불, 중국의 백자관세음보살상, 상아 관세음보살상, 돈황 천등불 45굴과 7세기 북위작품, 홍콩작품, 우리나라의 인화문분청, 음각청자, 해주광구병, 고창백자, 삼국시대 백제토기, 선사시대 홍토기, 12세기 고려 토기정병, 몽고 청동불, 20세기초 타라보살, 남순동자, 티베트, 스리랑카, 네팔, 베트남, 태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파키스탄 등 불교가 융성했던 동남아시아 국가 불상들이 모두 전시돼 있다.
 
적상산은 사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쌓인 천혜의 요새로 고려말 최영장군이 군사훈련을 시키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이 산에 성을 쌓아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여러차례 있었으나 광해군 2년에 부분적으로 성을 쌓은 것이 전부다. 그 후 성안에 사고를 설치하고 조산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해 왔다. 그러나 인조때 사고를 지키던 군사를 흩어져 보존이 어렵게 되자 승병모집을 위해 이 호국사를 짓게 됐다고 전해진다.
 
사찰을 돌아 나와 적상호 입구에서 만나는 두채의 건물이 바로 조선시대 4대사고중의 하나인 적상산 사고이다.
광해군 6년 실록각을 짓고  4년뒤 선조실록을 봉안했고, 인조 12년에 묘향산에 있던 조선왕조실록 일부를 다시 옮겨왔다. 이어 인조 19년에는 선원록을 다시 옮겨왔다. 그러나 1910년 조선왕조실록이 서울 규장각으로 옮겨지면서 황폐화됐다. 
 
사고가 있던 본래 자리도 1992년  양수발전소 댐 축조로 물에 잠기게 돼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게  됐으며 1997년 선원각 복각을 시작으로 1998년 실록각 복각이 완료됐다. 
 
댐을 한바퀴 돌아가면 물 저장탱크 같은 건물이 나타난다. 이 곳은 적상산 전망대로 한 50여m높이의 물탱크위에 전망대를 설치해 놨다.
 
이 탱크는 무주양수발전소의 상부저수지와 지하발전소 사이의 수로에 위치하는 조압수조이다. 이는 발전기가 예기치 않게 정지할 경우, 수로 내의 수압이 급상승하는 것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무주호와 저 멀리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 등 군소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사방을 돌다보면 어느새 가슴이 확 트이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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